스포일러 주의
220과 305, 306, 311
이 트랙들은 천추세인 전체를 통틀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전까지 문평은 '스스로의 의지로 활약하여'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주인공으로서 사건의 중심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지만, 천산에서는 그 어떤 굴욕을 당하더라도 (속으로는 어떤 불만을 표출했을지언정 결국은) 천마와 마중사기의 명령에 복종했고, 중원으로 나와서는 1차적으로는 포영의의 명을 따르다가 승효를 만난 이후로는 사랑에 빠져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2편에서 승효에 대한 이상한 위화감의 정체를 고민하던 문평은 동정호 유람선에서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관찰력과 추리력만으로 220 "넌 누구야"를 시전하며 처음으로 청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염을 토한다.
2편 중반에 비교적 일찍 승효의 정체가 공개되었기에 청자들은 듣는 내내 능욕당하는 문평이가 불쌍하면서도 입을 가리고 웃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언제 어떻게 승효의 정체가 드러날 것인가 조마조마했지만 220에서 그렇게 갑작스럽게! 심장을 폭행하듯!! 무엇보다 특별한 외부적 계기 없이 문평이 혼자 승효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임팩트갑👍👍👍)
그뿐인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적들의 습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문평의 머릿속은 짭승효의 정체에 대한 의문만이 가득했고, 305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안면 피부가 흉측한 파면객의 거친 손바닥을 보고 짭승효 정도의 고수가 아이 같은 손바닥을 가질 수 없음 > 아니 그런 자가 있긴 한데? > 천마였구나! 깨닫게 되고 그 배신감과 분노가 얼마나 심했던지 목숨까지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추리 과정과 관련하여 천마는 307에서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약점을 파헤친 문평이 예리하다며 진심으로 칭찬하듯 감탄하기도 했다)
문평은 천마의 정체를 깨달은 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맘 같아서는 치받아버리고 싶지만 무모하게 덤빌 상대가 아니므로, 일단은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숨긴 채 도망갈 길을 모색했던 것.
그 결과 이전까지는 승효를 무한신뢰하며 그의 말을 따랐던 문평은 306에서 겨우 몸을 추스리자마자 승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수배해 무한으로 서둘러 가자 재촉한다. 거의 처음으로 문평의 의지에 의해 천추세인의 사건 진행이 중요한 국면전환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한편, 천마는 문평이 깨어난 후 어색하게 구는 것을 보고 승효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승효가 잠적한 관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마차를 구해 떠나자고 고집하는 모습을 보고, 문평이 더 이상 승효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 자신이 승효에게 지시했던 것처럼 승효가 변덕을 부려 변심한 것처럼 진행되었다면, 상처는 받았을지언정 그 지고지순했던 문평의 순정이 하루아침에 이처럼 싸늘하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평 스스로 마음이 변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311. 이 트랙은 단순히 석문평 굴림씬😂일 뿐만 아니라, 사건 진행과 천평의 감정선 진행면에서 모두 중요한 트랙이라고 생각된다.
애초에 이 일의 발단이 문평이 현재 자신과 자옥이 처한 위기상황을 망각하고 파면객까지 떼어놓고 단독행동을 했기 때문인데 이는 문평 스스로도 후회했듯 드디어 마교를 탈출할 수 있다는 섣부른 해방감에 들떴기 때문이다.
305, 306에서 고민을 거듭했던 문평은 한시라도 빨리 무한에 도착하고 옥기린 일행에 합류하는 동시에, 천마를 찾았다는 사실을 뒤따르던 마영에게 알리고 나면, 포영의의 약속대로 마교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고 방심하게 되었던 것.
그러나 천마는 문평이 뒤따르는 마영에게 주기적으로 흑화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2편 초반 승효의 모습으로 문평을 만났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문평을 따돌리고 승효와 독대한 적도 있었던바, (심지어 문평이 사용하는 흑화체계는 천마가 새롭게 고안한 것이기까지 함)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문평이 무한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흑화를 남기는 것을 보고 그가 도망갈 것을 예상하여 추종향을 묻혀두는 치밀함을 보인다.

한편,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천마도 문평이 귀두삼귀에게 당할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는 마교의 흑화체계가 이미 곽효 무리에게 유출되었음을 의미하고, 이 또한 사건 진행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감정선 측면에서도 둘은 모두 중요한 진전을 보인다. 귀두삼귀는 강렬한 등장만큼이나 강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천마는 젖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문평이 안심한 어린아이처럼 어깨가 풀려버리는 모습에 낯선 감각을 느끼고 괜한 퉁박을 준다.

하필 310에서 겁간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최악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라, 지금 문평이 느낄 모멸감이 이해되기도 하고, 자신이 그 직전에 구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엉망이 된 옷차림으로 젖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며, 늘 자신에게만 세우던 날선 경계도 풀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안심하는 문평을 보고는 아무리 천마라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반면 문평은 이 순간만큼은 처음으로 (승효가 아닌) 천마에게 순수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것일 뿐만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까지 구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으로 느낀 그 고마움은 천마가 추종향을 묻혀 자신을 추노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반감되기는 했지만ㅠㅠㅠ
또한 문평은 평생 최악이었을 흉험한 경험을 했건만 "너는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느냐, 흙이라도 주워먹은 것이냐", "그러는 교주님은 저를 어떻게 찾은 것이냐", "추종향을 묻혔다", '뭐가 이리 당당해?', "뻔히 도망가려고 티를 내놓고 쫓아와서 구해준 것이 고까우냐" 천마와 티키타카 환장할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혼이 쏙빠져 자기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따위는 잊어버리게 된다. 그와 함께 있으면 늘 그렇다. 모든 것이 천마 위주로 돌아가니 다른 것은 잊게 되는데, 이처럼 천마에게 휘둘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배받고 있는 것인지 보호받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고, 고맙긴 한데 안 고맙고 안 고마우면서도 고마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문평 역시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결국 311은 석문평이 도망의 ㄷ자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한 석문평의 도망미수기라 할 수 있다. 문평은 이 사건을 겪으며 설령 어찌어찌 도망을 시도했었다 하더라도 이미 천마와 깊숙이 엮였을 뿐만 아니라 생강시 사건을 겪으며 자옥을 호위하는 등 곽효의 주요 표적이 된 이상 자신 정도의 무공으로는 안전하게 도망갈 수 없고, 그런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애초부터 천마의 손바닥 안이라 도망이라는 것이 성립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역으로 적어도 천마의 곁에 있으면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안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를 향한 알 수 없는 마음도 자라나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리고 빼먹을 뻔했지만 문평이 빌어먹을 채양보양술이라도 익히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311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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